[발행인 칼럼] 군수에게 가까운 사람보다, 주민에게 가까운 사람을
-민선 9기 첫 조직개편·대규모 인사를 바라보며
-30여 년 장기 군정의 경험은 계승하되 보이지 않는 인맥과 관행은 넘어야
-총애보다 능력, 줄보다 현장, ‘예스맨’보다 소신…군민에게 충직한 공직문화 세워지길
‘인사가 만사(人事萬事)’라고 했다.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직이 살아나기도 하고 힘을 잃기도 한다는 말이다.
민선 9기 화천군정이 출범한 지 두 달여. 화천군 공직사회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화천군 행정조직에 처음으로 2개 국(局)이 생기는 조직개편과 이에 따른 대규모 인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단순히 부서 몇 곳의 명칭을 바꾸고 자리를 옮기는 수준이 아니다. 민선 9기가 어떤 행정체계로 앞으로의 화천을 이끌 것인지, 누구에게 책임을 맡기고 어떤 공직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실상 첫 번째 조직 설계다.
그래서 공직사회뿐 아니라 주민들의 관심도 클 수밖에 없다.
인사철이면 으레 누가 승진하는지, 누가 국장·과장으로 발탁되는지, 어느 부서로 이동하는지가 화제가 된다.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인사가 끝난 뒤 화천군청이 달라지는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다.
30여 년 민선 군정, 긴 시간의 빛과 그늘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 이후 화천군은 홍은표 군수의 재선에 이어 정갑철·최문순 군수가 각각 3선을 지냈고, 이제 네 번째 민선 군수인 김세훈 군수가 군정을 이끌고 있다.
돌이켜보면 화천의 민선 군정은 한 군수가 비교적 오랜 기간 군정을 이끄는 시기가 세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장기간의 군정 운영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업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행정 경험과 노하우 역시 화천이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오늘의 화천이 있기까지 역대 군수들과 수많은 공직자가 쌓아온 성과를 결코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긴 시간에는 빛과 함께 그늘도 생길 수 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고 그러한 군정이 이어지다 보면 조직 안의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누구와 함께 근무했는지, 어느 부서에서 인연을 맺었는지, 누가 누구와 가까운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인맥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신뢰와 친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 순간 능력과 성과보다 강한 힘을 갖기 시작할 때다.
공식적인 조직도 뒤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가 작동하고, 특정 사람들이 주요 보직을 반복해 오가며 서로 밀고 끌어주는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가 굳어진다면 조직의 건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일이 화천군 공직사회에 실제 존재한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30여 년의 민선 군정을 지나 새로운 군정이 출범하고 행정조직의 틀까지 크게 바꾸는 지금이라면, 그러한 우려를 낳을 수 있는 구조와 관행은 없었는지 한번쯤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것은 사람을 모조리 바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부터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몇몇 ‘특별한 사람’만 계속 주목받아서는 안 된다
긴 세월 조직을 바라보다 보면 유난히 많은 기회를 얻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능력이 뛰어나서라면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능력과 성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요 보직과 기회가 집중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조직 구성원들은 생각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조직 안에 퍼지는 순간 조직은 조금씩 활력을 잃기 시작한다.
인사권자의 총애를 받는 몇몇 ‘특별한 사람’만 계속 주목받고, 중요한 자리를 맡고, 성과를 인정받고, 또다시 좋은 기회를 얻는 구조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화천군청은 몇몇 사람의 능력만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몫을 묵묵히 해온 훨씬 많은 공직자가 있다.
읍·면 현장에서 매일 주민을 상대해 온 직원이 있다. 격무부서에서 남들이 꺼리는 일을 떠맡아 온 직원도 있다. 민원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부서를 오가고 관계기관을 찾아다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화려한 성과 뒤에서 자료를 만들고 현장을 챙기며 이름 없이 조직을 떠받쳐 온 사람도 있다.
이번 인사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당신도 이 조직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묵묵히 일해 온 시간도 제대로 보고 있다.”
승진자는 일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정받는 사람은 조직 전체가 될 수 있다.
좋은 인사는 승진자 몇 명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승진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다시 일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민선 9기 첫 대규모 인사가 소수에게만 꽃다발을 안기는 인사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자긍심과 희망을 돌려주는 인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꽃길을 걸었다고 밀어내서도, 가시밭길을 걸었다고 보상해서도 안 된다
지난 긴 시간 동안 공직자들이 걸어온 길은 모두 같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능력을 인정받아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비교적 순탄한 ‘꽃길’을 걸었을 것이다.
반면 묵묵히 일하고도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 군정의 첫 인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전임 군정에서 꽃길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유능한 공직자를 밀어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가시밭길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이나 성과와 관계없이 자리를 보상해서도 안 된다.
인사는 보복도 아니고 보상도 아니다.
과거의 인사를 다시 심판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꽃길을 걸었든 가시밭길을 걸었든 이제 같은 기준으로 다시 평가하면 된다.
능력이 있는가.
책임감이 있는가.
성과를 냈는가.
청렴한가.
동료와 후배에게 신뢰받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을 바라보며 일했는가.
그것이면 된다.
‘누구의 사람’이라는 꼬리표부터 떼어내자
장기간 한 군정이 이어지다 보면 공직자들에게 본인도 원하지 않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누구 때 잘나갔던 사람.’
‘누구와 가까웠던 사람.’
‘어느 쪽 사람.’
이제 그런 꼬리표부터 떼어낼 필요가 있다.
전임 군수와 가까웠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되고, 현 군수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아서도 안 된다.
지난 군정에서 중용됐던 사람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다시 쓰면 된다.
반대로 오랫동안 변방에 있었더라도 주민 곁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온 능력 있는 공직자가 있다면 이번에는 과감하게 찾아내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인사 쇄신이다.
‘전임 군수 사람’도 없어야 하고 ‘현 군수 사람’도 없어야 한다.
화천군청에는 오직 ‘군민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인사자료 밖의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번 인사에서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인사권자의 눈에 잘 보이는 사람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크고 보고를 잘하며 자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눈에 띈다.
그러나 행정의 진짜 현장에는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폭우가 쏟아질 때 마을로 달려간 사람.
폭설이 내린 새벽 주민의 길부터 걱정했던 사람.
농민의 하소연을 듣기 위해 논밭으로 찾아간 사람.
복지 사각지대의 한 가정을 위해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던 사람.
주민의 작은 숙원 하나를 해결하려고 마을회관에서 수없이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
민원인의 거친 목소리를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해결책을 찾았던 사람.
그들은 화려한 보고서에 이름을 크게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군수실을 자주 드나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위 ‘요직’을 두루 거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민은 그런 공직자를 기억한다.
민선 9기의 첫 대규모 인사가 찾아내야 할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인사기록에 적힌 보직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걸어온 현장을 봤으면 한다.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보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느냐를 봐야 한다.
상사의 평가도 필요하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동료와 후배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살펴봤으면 한다.
주민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군수에게 ‘예’만 하는 사람이 충신은 아니다
여기에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의 공직자상이 있다.
윗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직생활에서 상사의 뜻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인사권을 가진 군수나 고위 간부 앞에서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장의 생각은 다릅니다”, “주민들에게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검토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한마디 때문에 불편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고, 승진이나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조직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윗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조직을 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건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군수가 모든 현장을 알 수는 없다.
수많은 정책의 세부적인 문제까지 혼자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공직자가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문제점을 찾아내며, 필요하면 그것을 군수와 간부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공직자의 중요한 책무다.
군수가 듣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이 참모의 역할이 아니라, 군수가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을 전달하는 것이 진짜 참모의 역할이다.
그런 공직자가 많아야 군수도 성공한다.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알려주고, 잘못된 판단을 막아주며,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은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주민 편에 설 수 있는가
‘주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의 진정성은 자신의 이해와 주민의 이익이 충돌할 때 드러난다.
주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을 때 자신의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면서도 소신을 말할 수 있는가.
윗사람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현장의 사실을 그대로 보고할 수 있는가.
잘못된 판단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근거와 대안을 갖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그런 공직자가 진짜 주민에게 필요한 공직자다.
물론 소신과 독선은 다르다.
상사를 무시하고 조직의 질서를 흔드는 것이 소신은 아니다.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도 용기가 아니다.
충분한 사실과 근거를 갖고 대안을 제시하되, 결정된 정책에는 책임 있게 임하는 것.
그러면서도 주민의 중대한 이익이 걸린 문제만큼은 침묵하지 않는 것.
우리가 기대하는 공직자의 소신은 그런 것이다.
‘군수의 충신’이 아니라 ‘군민의 충신’
흔히 조직에서는 충성심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방행정에서 충성의 대상은 분명해야 한다.
군수가 아니다.
간부도 아니다.
자신을 승진시켜 준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공직자가 끝까지 충직해야 할 대상은 군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선 9기 화천군청에는 새로운 ‘충신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인사권자에게 무조건 ‘예’라고 하는 사람을 충신으로 여기는 문화가 아니다.
군수의 판단이 옳을 때 누구보다 힘껏 뒷받침하면서도 주민의 이익과 어긋날 우려가 있을 때는 용기를 내어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화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리를 걸 수도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수와 간부들 역시 그런 공직자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멀리한다면 어느 순간 주변에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만 남는다.
반대로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공직자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묻고, 합리적인 의견이라면 받아들이며,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그 소신 때문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조직은 달라진다.
공직자들도 알게 된다.
“이 조직에서는 바른말을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 믿음이 생기면 보고가 달라지고 회의가 달라진다.
문제가 감춰지지 않고 위로 올라온다.
현장의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고 군수에게 전달된다.
결국 그것이 군수에게도 가장 든든한 안전장치다.
가장 위험한 조직은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는 조직은 강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만 내는 조직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다.
“예, 맞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문제없습니다.”
이런 말만 들리는 조직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정책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주민들의 불만을 알면서도 위에 전달하지 않으며, 실패 가능성을 알면서도 책임지기 싫어 침묵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주민에게 돌아간다.
좋은 군수에게는 자신을 잘 따르는 사람만큼이나 자신에게 바른말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좋은 간부 역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후배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민선 9기의 첫 인사가 그런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줄을 잘 서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을 잘 아는 사람.
보고를 잘 포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을 정확하게 보고하는 사람.
윗사람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의 형편을 먼저 살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이라면 굳이 ‘내 사람’을 만들 필요가 없다.
모두가 군민의 사람이 되면 되기 때문이다.
법과 규정을 지키는 것과 법과 규정 뒤에 숨는 것은 다르다
이번 인사에서 반드시 살펴야 할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공직자가 주민을 어떤 자세로 대했는가이다.
공직자는 당연히 법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
행정이 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주민이 원하는 일이라도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민원을 해결하는 것은 적극행정이 아니다.
그러나 법과 규정을 지킨다는 것과 법과 규정 뒤에 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주민이 어려움을 호소하며 찾아왔을 때 처음부터 “규정상 안 됩니다”라고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기 전에 안 되는 이유부터 설명하고, 주민의 사정을 충분히 듣기도 전에 법조문과 규정부터 들이대는 경우도 있다.
행정을 잘 모르는 주민을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이 가진 작은 권한을 앞세워 주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는 더 큰 문제다.
주민은 행정의 지시를 받기 위해 군청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주민이 행정의 주인이다.
공직자는 주민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좋은 공직자는 법과 규정을 잘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테두리 안에서 주민에게 가능한 길이 무엇인지 끝까지 찾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안 됩니다”에서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이 방법은 어렵습니다. 대신 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법과 규정은 주민을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공정한 행정을 지키면서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주민을 가르치려는 사람보다 주민에게 배우는 사람
공직생활을 오래 했다고 주민보다 지역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행정은 책상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농사의 어려움은 농민이 더 잘 안다.
장사의 현실은 상인이 더 잘 안다.
마을길 하나가 왜 필요한지는 그 길을 매일 오가는 주민이 누구보다 잘 안다.
어르신의 불편은 그 삶을 가까이에서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좋은 공직자는 그래서 주민에게 설명하기 전에 먼저 듣는다.
주민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현장에서 배운다.
직급과 권한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묻는다.
“무엇이 가장 불편하십니까.”
반대로 주민을 귀찮은 민원인으로 여기고, 행정을 모른다고 낮춰보며, 직위를 앞세워 군림하려는 자세는 인사 과정에서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면 배울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하면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주민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자세가 잘못돼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주민을 섬겨야 할 자리에 주민 위에 서려는 사람을 앉혀서는 안 된다.
업무능력과 경력 못지않게 주민을 대하는 자세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화천을 단순한 ‘출퇴근 직장’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번 인사에서 한 가지 더 세심하게 살펴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화천에 대한 애정과 생활의 밀착도다.
공직자의 거주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자는 뜻은 아니다.
직장과 거주지가 다른 데에는 가족과 자녀교육을 비롯해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외지에서 출퇴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나 지역에 대한 애정을 일률적으로 낮게 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를수록 한번쯤 물어야 할 것은 있다.
그 사람에게 화천은 과연 무엇인가.
하루 근무를 마치면 떠나는 직장일 뿐인가.
아니면 자신의 결정 하나가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퇴근 이후에도 고민하게 되는 삶의 현장인가.
흔히 ‘몸이 떠나면 마음도 떠나기 쉽다’고 한다.
반드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지역에 생활의 뿌리를 두지 않은 채 오랫동안 출퇴근만 반복하다 보면 주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불편과 지역의 작은 변화까지 피부로 느끼기 어려워질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저녁 무렵 읍내 상가가 얼마나 한산한지.
주말이면 지역에서 사람이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전통시장 상인들이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는지.
겨울철 폭설이 내린 날 산간마을 주민들이 어떤 불편을 겪는지.
군부대가 이동하고 장병 숫자가 줄어들 때 동네 상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것은 보고서만으로 전부 알기 어렵다.
지역은 근무시간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천군민의 삶은 오후 6시에 끝나지 않는다.
밤에도 이어지고 주말에도 계속된다.
특히 국장이나 과장처럼 정책을 결정하고 조직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화천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화천에 거주하는 것 자체를 지역에 대한 헌신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화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면 화천을 단순한 직장 이상의 곳으로 바라보는 자세만큼은 분명해야 한다.
몸의 주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주소’
주민들이 최소한 이런 느낌만큼은 받지 않았으면 한다.
“화천의 삶과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화천군민 위에 서서 다스리려 한다.”
이것은 출신지역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자존심과 지방자치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화천군청은 중앙정부의 출장소도 아니고 어느 도시의 지청도 아니다.
화천군민을 위해 존재하는 화천의 행정기관이다.
그렇다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화천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화천의 마을을 알아야 하고 주민의 삶을 알아야 한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어온 어려움을 알아야 하고, 군부대와 함께 살아온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농민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소상공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읍·면마다 어떤 숙원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산천어축제 몇 번 둘러보고 주요 관광지를 방문했다고 화천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지역을 안다는 것은 지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다.
마음의 주소이고, 책임의 주소다.
화천에서 봉급을 받으면서 다음 승진과 다음 근무지만 생각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이 있는 동안 화천에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남겨놓겠다는 책임을 가진 사람인지.
주민의 어려움을 하나의 민원번호로 보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이웃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그 차이를 살펴야 한다.
외지 출신이어도 화천을 사랑하고 주민을 위해 헌신했다면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
반대로 화천 출신이고 화천에 살더라도 주민보다 자신의 자리만 생각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묻는 것은 출신지가 아니다.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
몸의 주소보다 책임의 주소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을 보자는 것이다.
화천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마음만큼은 화천에 살아야 한다.
그 정도는 화천군민이 책임 있는 공직자에게 기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세우되, 옥석도 가려야 한다
좋은 인사는 숨은 사람을 찾아내고 기회를 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려야 할 것은 분명히 가려야 한다.
인맥에 기대어 자리를 지켜온 사람.
성과보다 처신에 능했던 사람.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낮지만 주민에게는 권위적인 사람.
책임질 일이 생기면 뒤로 물러서고 성과가 생기면 앞에 나서는 사람.
법과 규정을 주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패로 사용하는 사람.
화천을 자신의 삶과 무관한 단순한 근무지로만 여기는 사람.
그런 모습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주민에게 불친절하거나 행정 권한을 특권처럼 사용하는 자세는 업무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공직자가 가진 권한은 주민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사람을 세우는 인사인 동시에 공직사회의 옥석을 가리는 인사가 되어야 한다.
총애받는 몇 사람만 다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진짜 일을 해온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주민 위에 군림하려는 잘못된 공직문화에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군수에게 가까운 사람보다 주민에게 가까운 사람
결국 이번 인사의 방향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이것이다.
군수에게 가까운 사람보다 주민에게 가까운 사람이 인정받는 화천군청.
그런 조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군청 내부에서는 영향력이 큰 사람인데 정작 주민들은 그 사람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반대로 직급은 높지 않아도 어느 마을을 가든 주민들이 이름을 기억하며 “그 사람 참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그 평가 역시 소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정은 결국 주민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군수의 눈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주민을 바라볼 시간이 줄어든다.
상사의 마음을 읽는 능력보다 주민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인정받아야 한다.
줄을 찾는 사람보다 현장을 찾는 사람이 인정받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인맥보다 주민에게 보이는 성과가 힘을 갖는 조직이어야 한다.
2국 체제, 자리가 아니라 책임이 커져야 한다
이번 조직개편은 화천군에 처음으로 2국 체제가 도입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국장 자리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조직의 몸집만 커지고 결재 단계만 하나 늘어난다면 조직개편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장은 여러 부서를 연결하고 조정하며 복잡해진 행정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실질적인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부서 사이의 칸막이를 허물고 중요한 정책을 조율하며, 문제가 생기면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초대 국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 인사는 더욱 중요하다.
연공서열만으로는 부족하다.
친소관계로는 더더욱 안 된다.
행정 경험과 판단력, 조정능력과 추진력은 물론 후배 공직자들의 신뢰, 주민을 바라보는 자세, 지역에 대한 책임감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자리가 늘어나는 조직개편이 아니라 책임이 커지는 조직개편이어야 한다.
첫 인사는 앞으로 4년의 ‘교과서’가 된다
이번 인사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공직자들은 이번 인사를 보면서 앞으로 4년 동안 ‘화천군에서는 어떻게 일해야 인정받는가’를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는다고 느낄 것인가.
주민을 위해 성과를 내면 기회가 온다고 믿을 것인가.
남들이 꺼리는 어려운 일을 맡아도 언젠가는 평가받는다고 생각할 것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할 것인가.
주민을 위해 소신 있게 바른말을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믿을 것인가.
주민에게 친절하고 겸손하게 일하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느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누구와 가까워야 하는지,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인가.
첫 인사는 말보다 강하다.
아무리 적극행정과 혁신을 강조해도 인사가 그 방향과 다르면 공직자들은 말이 아니라 인사를 믿는다.
그래서 이번 인사는 단순한 승진·전보 명단이 아니다.
김세훈 군수가 앞으로 어떤 공직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원칙을 세우는 일
새 군정이라고 해서 지난 30여 년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잘된 정책은 계승해야 하고 축적된 행정 경험은 소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오늘의 화천을 만든 수많은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경험을 가진 공직자들도 화천의 중요한 자산이다.
민선 9기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잘된 것은 계승하고, 부족했던 것은 고치며,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오랜 세월 속에서 혹시 굳어진 관계와 관행이 있다면 걷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인맥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
그 빈자리는 원칙으로 채워야 한다.
인사는 군수의 권한이지만 행정은 군민의 것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인사는 없다.
누군가는 승진하고 누군가는 기다려야 한다.
원하는 보직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생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원칙이다.
자신이 승진하지 못했더라도 “그래도 일한 사람이 인정받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
원하는 자리로 가지 못했더라도 “능력과 적성을 보고 사람을 배치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인사.
쓴소리를 했던 사람도 “적어도 소신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인사.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인사.
그런 인사라면 조직은 다시 움직인다.
반대로 기준을 알 수 없는 인사는 당장은 조용해 보여도 조직 안에 긴 그림자를 남긴다.
인사권은 군수에게 있다.
그러나 군청은 군수 개인의 조직이 아니다.
행정은 군민의 것이다.
따라서 인사의 마지막 기준 역시 군민이어야 한다.
민선 9기 화천군의 첫 조직개편과 대규모 인사가 다가오고 있다.
주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누구의 시대가 끝나고 누구의 시대가 시작됐는가’가 아니다.
화천군청에 새로운 원칙이 시작됐는가.
그것을 보고 싶다.
꽃길을 걸었던 사람에게도 다시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주고,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면 된다.
과거 누구와 가까웠는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고, 인맥이 아니라 능력을 보고, 말보다 일을 보고 사람을 쓰면 된다.
그리고 꼭 찾아냈으면 한다.
오랫동안 주민과 지역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
법과 규정 뒤에 숨지 않고 그 안에서 주민을 위한 길을 찾아온 사람.
주민 앞에서 권위를 세우기보다 먼저 귀를 기울였던 사람.
화천을 단순한 근무지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던 사람.
그리고 주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작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윗사람 앞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화천군청 곳곳에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인사권자의 능력이다.
이번 인사가 끝난 뒤 화천군청 안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제 누구를 아느냐보다 어떻게 일했느냐가 중요해졌다.”
“바른말을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누구의 사람이 아니어도 능력과 소신이 있으면 기회를 얻는다.”
“묵묵히 일해도 언젠가는 알아준다.”
그리고 주민들에게서는 이런 이야기가 들렸으면 한다.
“그래, 주민 곁에서 일하던 사람을 제대로 찾아냈구나.”
그렇게 된다면 화천군 최초의 2국 체제는 단순히 조직의 몸집을 키우는 개편이 아니다.
30여 년 민선 행정의 경험을 딛고 화천군 공직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인사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자 조직이 앞으로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길 것인지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민선 9기 첫 조직개편과 대규모 인사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도 결국 그것이다.
군수에게 가까운 사람보다 주민에게 가까운 사람.
군수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보다, 군수를 위해서라도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사람.
화천을 단순한 근무지로 여기는 사람보다, 화천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군수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군민에게 충직한 사람.
그런 공직자가 인정받는 화천군청.
민선 9기 첫 조직개편과 대규모 인사가 그 새로운 공직문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