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쪽은 담장을 허무는데, 한쪽은 담장을 세운다
공공시설의 담장은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다. 그 담장 안팎에는 공공기관이 주민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담겨 있다.
최근 화천에서는 묘하게 대조되는 두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보안시설로 관리돼 주민들의 접근이 제한됐던 제2하나원은 국가보안시설 해제를 계기로 철조망과 담장을 걷어내고 주민에게 공간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교육과 정착 지원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 온 시설이 이제 당초의 주된 기능을 내려놓고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며, 주민 의료서비스와 시설 개방 등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통일부 관할의 국가시설이지만 더 이상 지역과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나아가 지역과 국가에 기여하는 새로운 공공공간으로 기능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런데 화천의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대조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수십 년 만에 새로 짓는 교육청사에는 담장이 들어서고 있다.
물론 공공청사에는 시설관리와 안전, 보안 등을 위해 일정한 경계가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담장을 설치한다는 사실만으로 잘못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청사가 들어서는 주변의 현실이다.
청사 주변에는 오래전에 형성된 주택가와 좁은 골목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해 있고 일부 골목은 넉넉하지 못하다. 오랜 세월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굳어진 구조다.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좁은 골목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만이 아니다.
만일 주택가에서 화재나 긴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소방차와 구조·구급차량이 얼마나 신속하고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들이 원해서 만들어진 골목도 아니다.
오래된 도시계획과 도시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현실이고, 이제 와서 개별 주민들의 힘만으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런데 이번 교육청사는 전혀 새로운 곳에 처음 들어서는 공공청사가 아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교육행정기관이 수십 년 만에 청사를 다시 짓는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
교육청은 오랜 세월 이곳에 자리하면서 바로 이웃한 주택가의 사정과 골목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어느 골목이 좁은지, 오래된 주택들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서 있는지, 주민들이 어떤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모르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그렇다면 수십 년 만에 새 청사를 짓는 이번 기회에 청사 안쪽뿐 아니라 담장 밖 이웃들의 오랜 불편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는 없었을까.
새 청사를 짓는다는 것은 낡은 건물을 새 건물로 바꾸는 일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재건축의 기회라면 그동안 청사 주변에 쌓여온 불편과 문제까지 돌아보고, 앞으로 또 수십 년 동안 이웃 주민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설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주변의 좁은 골목과 노후 주택가가 화재나 긴급상황에 취약할 수 있다는 주민들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면, 새 청사를 설계하고 조성하는 과정에서 청사 공간이 주민 안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방법은 없었는지 더욱 세심하게 살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사 부지 일부라도 비상시 소방·구조 차량의 접근이나 활동에 도움을 줄 수는 없는지, 담장의 위치와 형태를 조정해 보행과 안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는 없는지, 평상시에는 주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면서도 필요한 보안과 시설관리를 병행할 방법은 없는지 살펴볼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담장을 무조건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담장보다 먼저 주민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주민들이 느끼는 아쉬움도 단순히 ‘담장이 생겼다’는 데만 있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한 이웃으로 살아온 공공기관이 수십 년 만에 새집을 지으면서, 담장 너머 이웃들의 오래된 사정까지 조금 더 헤아려주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2하나원과 신축 교육청사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때 철조망과 담장이 반드시 필요했던 국가보안시설은 시대와 기능의 변화에 맞춰 그 경계를 걷어내며 주민에게 다가가려 한다.
반면 지역 주민들과 수십 년 동안 이웃해 온 교육행정기관은 새 청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담장을 세우고 있다.
한쪽에서는 오랫동안 존재했던 경계를 허물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수십 년 만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다시 경계를 세우고 있는 셈이다.
물론 두 시설의 기능과 성격은 다르다. 필요한 보안 수준과 시설관리 방식도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두 시설을 단순 비교해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장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오늘날 공공청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과거의 공공청사는 기관의 업무 수행과 시설 보호가 우선이었다. 담장을 두르고 출입구를 관리하며 기관의 공간과 주민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공공건축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건물을 넘어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청사 앞마당과 주차장, 보행로와 녹지공간을 주민과 공유하고 지역 여건에 따라서는 재난이나 긴급상황에 지역사회의 안전을 보완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새로 짓는 공공청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만들어져 어쩔 수 없는 공간이라면 몰라도, 지금 새롭게 설계하고 건립하는 청사라면 건물 안에서 근무할 사람들뿐 아니라 그 건물과 앞으로 수십 년을 이웃하며 살아갈 주민들의 생활까지 살펴야 한다.
교육행정기관이라면 더욱 세심했으면 한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벽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이다. 학교와 지역사회, 행정과 주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키우는 것 역시 교육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새 교육청사 역시 ‘기관을 위한 청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과 함께하는 청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공공청사는 한번 지으면 수십 년을 사용한다.
건물도 남고 담장도 남는다. 그리고 그 청사와 이웃한 주민들의 삶도 계속된다.
그렇기에 처음 설계하고 조성할 때부터 청사 안쪽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담장 너머의 마을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오래된 주택가와 맞닿아 있는 공공청사라면 ‘우리 부지는 여기까지’라는 경계를 긋는 것보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공공기관다운 자세일 것이다.
화천에서는 이미 그 반대편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제2하나원은 국가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철조망과 담장 안에 있었지만, 이제 그 철조망과 담장을 걷어내며 주민에게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변화가 의미 있는 까닭은 단순히 시설 하나를 개방하는 데 있지 않다.
공공시설이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교육청사의 담장을 바라보며 주민들이 던질 법한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보안시설도 철조망을 걷어내는데, 수십 년 만에 새로 짓는 공공청사는 꼭 담장을 세워야 하는가.”
이는 담장 하나를 둘러싼 불평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공공건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며, 오래된 주택가와 좁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안전과 생활을 한 번만 더 생각해 달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담장 하나를 두고 너무 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와 마을의 모습은 결국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담장을 세우는 선택과 길을 내주는 선택, 기관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선택과 담장 너머 주민의 삶까지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선택.
수십 년 뒤 화천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구호보다 이런 작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제 공공청사는 행정기관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담장은 재산의 경계일 수는 있어도 마음의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시설이었던 제2하나원조차 철조망과 담장을 걷어내며 주민에게 다가서는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 짓는 공공청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주민과 등을 맞댄 담장보다 주민에게 길을 내주고, 오래되고 좁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안전까지 함께 품는 공간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쪽은 담장을 허물고 있다.
다른 한쪽도 담장을 세우기에 앞서, 그 담장 너머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부터 바라봤으면 한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