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화천 고속도로, 이제 길을 바꿔 생각할 때다
-춘천만 기다리지 말고 ‘포천~화천’ 새로운 수도권 직결축을 준비하자-
철원이 움직이고 있다.
지난 11일 철원관광정보센터에서 열린 ‘2026 포천~철원 고속도로 포럼’의 구호는 선명했다.
“포천~철원 고속도로, 이제는 착공입니다!”
또 하나의 문구는 더 인상적이었다.
“접경을 넘어, 철원의 새로운 길을 열자!”
이날 포럼에서 나온 “포천~철원 고속도로, 24㎞가 바꿀 철원의 미래”라는 발표 제목은 철원이 이 도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단순히 자동차가 조금 더 빨리 다니는 도로가 아니다.
수도권과의 거리를 좁히고 의료와 교육, 일자리와 산업, 관광의 접근성을 높여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생존 SOC’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철원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화천도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화천의 미래를 바꿀 고속도로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더 솔직하게 물어보자.
화천은 언제까지 춘천만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기다릴 것인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
화천의 고속도로 논의는 오랫동안 중앙고속도로 춘천 이북 연장에 기대를 걸어왔다.
춘천에서 화천을 거쳐 철원 방향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구상이 그것이다.
필요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지역의 미래 SOC는 희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기다렸는데도 현실화가 요원하다면 이제는 기존 구상만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이 있는지 냉정하게 찾아볼 때도 됐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춘천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화천의 생활권에서 춘천은 여전히 중요하다. 의료와 교육, 행정과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춘천과의 접근성은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춘천이 아니다.
실현되지 않는 하나의 고속도로 노선만 바라보며 마냥 기다리는 전략이다.
도로 하나를 선택한다고 다른 도로를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천의 미래를 위해 동쪽도 보고 남쪽도 보되, 이제는 서쪽도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 서쪽에 포천과 수도권이 있다.
목적지는 포천이 아니다
‘포천~화천 고속도로’를 이야기하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화천 사람들이 포천에 갈 일이 얼마나 있다고 고속도로까지 필요한가.”
그러나 이 질문은 이 구상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목적지는 포천이 아니다.
포천은 화천에서 수도권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이다.
화천에서 서쪽으로 나가면 포천을 거쳐 수도권 북부의 광대한 생활·경제권과 연결될 수 있다.
서울과 경기북부로 향하는 새로운 고속교통축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지역의 도로망은 어느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물류가 움직이고, 기업과 관광객이 들어오며, 주민들이 병원과 학교와 직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생활권과 경제권을 연결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천축은 화천이 지금까지 충분히 바라보지 않았던 방향이다.
광덕터널 너머를 보자
더구나 화천에는 중요한 변화가 준비되고 있다.
광덕터널이다.
광덕터널이 현실화되면 화천과 수도권 북부 사이의 접근 여건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터널 하나를 뚫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광덕터널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포천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수도권이 있다.
광덕터널을 수도권 접근성을 개선하는 1단계 사업으로 본다면, 가칭 ‘포천~화천 고속도로’는 그 이후를 준비하는 중장기 국가교통망 전략으로 검토할 수 있다.
광덕터널과 고속도로는 같은 사업이 아니다.
하지만 두 사업을 하나의 장기적인 교통 전략 속에서 바라볼 수는 있다.
터널이 길을 열고 그 길이 광역도로망으로 이어진다면 화천의 교통지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철원과 경쟁할 일이 아니다
철원은 이미 포천~철원 고속도로 현실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국가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포천~철원 고속도로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포천~화천 고속도로’는 현재 확정된 국가사업이 아니다.
화천이 앞으로 검토하고 국가 의제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다.
이 차이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화천의 고속도로를 철원과의 경쟁구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철원이 먼저 움직였다고 해서 화천이 뒤늦게 몫을 요구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철원의 움직임에서 배워야 한다.
지역이 필요성을 제기하고, 정치권과 행정이 움직이고, 주민들이 뜻을 모아 국가계획에 반영시키기까지 얼마나 오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를 봐야 한다.
더 큰 그림도 생각할 수 있다.
포천~철원 고속도로와 화천의 서부 교통망을 각각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포천·철원·화천을 연결하는 접경지역 광역 고속교통망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할 수도 있다.
접경지역끼리 길을 놓고 경쟁할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넓히는 것이다.
화천에는 ‘길’이 생존 문제다
화천은 다른 지역과 여건이 다르다.
산악지형과 군사시설, 각종 규제로 인해 오랫동안 개발과 교통 인프라 확충에서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국가안보를 위해 감내해 온 희생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접경지역의 교통망 확충은 단순한 지역개발 요구로만 볼 일이 아니다.
국가안보를 위해 불편과 규제를 감수해 온 지역에 국가가 어떤 미래를 돌려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속도로는 단순히 차량이 빨리 달리는 길이 아니다.
병원 가는 길이고, 일하러 가는 길이다.
아이들이 배우러 나가는 길이고, 기업이 들어오는 길이다.
농산물이 시장으로 나가는 길이며 관광객이 화천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떠나지 않고 살 수 있게 만드는 길이다.
그래서 접경지역에서 SOC는 편의시설이 아니라 때로는 생존 기반이다.
철도는 동서를 열고, 도로는 수도권을 열고
앞으로 화천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동서고속화철도 화천역이다.
철도가 개통되면 화천의 동서 접근성은 지금과 전혀 달라진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화천의 교통전략은 더욱 입체적으로 짜야 한다.
철도는 동서를 열고, 광덕터널과 포천축은 수도권을 연다.
여기에 기존 춘천 생활권 연결망까지 더해진다면 화천은 더 이상 교통망의 끝이 아니다.
수도권 북부와 강원 북부, 동해안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 결절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생긴다.
화천이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그림이다.
도로 하나, 터널 하나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20년, 30년 뒤 화천의 국가교통망 지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
우선 지도에 선부터 긋자
물론 ‘포천~화천 고속도로’가 말처럼 간단한 사업일 리 없다.
노선도 없다.
사업비도 정해지지 않았다.
경제성과 정책성 검토도 필요하다.
국가도로망종합계획과 고속도로 건설계획 등 국가계획에 반영되는 지난한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지금 시작해야 한다.
당장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가능성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화천군 차원의 기초검토부터 시작할 수 있다.
어떤 노선이 가능한지, 광덕터널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포천~철원 고속도로와 연계 가능성은 있는지, 수도권 접근시간은 얼마나 단축되는지, 산업·관광·의료·교육 분야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인접 지방자치단체와 강원특별자치도, 경기도가 함께할 부분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타당성이 있다면 국토교통부와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우선 지도 위에 화천의 선부터 그어보자.
지도에도 없는 길을 국가가 먼저 만들어줄 리 없다.
지역이 선을 긋고 논리를 만들고 요구해야 비로소 국가의 지도에 올라갈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다면 누가 이 길을 챙길 것인가
결국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화천 고속도로는 누가 챙길 것인가.
지역의 대형 SOC에는 언제나 처음 깃발을 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
연구용역을 시작하도록 만드는 사람.
강원특별자치도의 계획에 반영시키기 위해 뛰는 사람.
국토교통부를 찾아가고 국회를 설득하는 사람.
그리고 국가계획에 언젠가 ‘포천~화천’이라는 이름을 올려놓기 위해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화천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누가 실제 움직이는지를 보고 싶다.
어느 정당 사람이냐가 먼저일 이유도 없다.
진보냐 보수냐가 고속도로 노선을 결정할 수도 없다.
화천을 위해 누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누가 중앙정부를 움직일 힘과 의지를 보여주는지를 보면 된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지켜보자.
말에 그치는지, 행동으로 옮기는지 확인하자.
그리고 정말 화천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뛰는 사람이라면 지역사회도 그 노력에는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길은 정치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만든다.
그러나 국가가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기다리는 화천에서 길을 만드는 화천으로
철원에서는 “24㎞가 바꿀 철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물어야 한다.
화천의 미래를 바꿀 길은 어디에 있는가.
춘천만 바라보며 기다린 시간이 충분히 길었다면 이제 고개를 돌려 다른 가능성도 살펴보자.
다시 말하지만 춘천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춘천 하나만 바라보는 고속도로 전략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남쪽으로 춘천이 있다면 서쪽에는 포천이 있다.
그 너머에는 수도권이 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덕터널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그 터널 너머까지 바라보자.
포천~화천 고속도로.
지금 존재하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사업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은 지도 위에 선 하나조차 없는 길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사업은 처음부터 국가사업이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 필요성을 제기했고, 누군가 처음 선을 그었고, 누군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마침내 길이 됐다.
화천에도 이제 그런 시작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교통정책에서 찾아가는 교통정책으로 바꾸자.
주어진 길만 다니는 화천에서 필요한 길을 스스로 요구하는 화천으로 바꾸자.
그리고 화천의 미래를 위해 정말 그 길을 열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눈여겨보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믿어보자.
화천의 새로운 길은 누군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는 순간 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시작된다.
이제 화천도 새로운 선을 그어보자.
광덕터널을 넘어 포천으로, 그리고 수도권으로.
화천의 다음 30년을 위한 길을 지금부터 준비하자.
【김용식】